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매일매일 가정에서 드리는 당신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생각하십니다.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

사도신경 (The Apostle's Creed)

(다함께 읽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들어가는 기도

가정을 대표하여 한 사람이 오늘의 예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찬양

(다함께 부릅니다)
390장 (통일 444장) ♬ 예수가 거느리시니

1.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주야에 자고 깨는 것 예수가 거느리시네

<후렴>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2.
때때로 괴롬당하면 때때로 기쁨 누리네
풍파중에 거느리고 평안할 때에 거느리네

3.
내 주의 손을 붙잡고 천국에 올라가겠네
괴로우나 즐거우나 예수가 거느리시네

4.
이 세상 이별할 때에 마귀의 권세 이기네
천국에 가는 그 길도 예수가 거느리시네

아멘.

성경 : 고린도전서 2장 9-16절

말씀

기독교 또는 교회에서 영적이라는 말을 하면 왠지 신비적인 것 같아 거부감이 들거나 터부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상식과 합리성을 외면하지는 않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다 설명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깨닫는 존재라면 영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육 간에 모든 면에서 제한된 존재이기에 성경의 진리와 또는 여러 가르침들을 영적이라는 말을 빼고서는 말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영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형상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영()이시기에 우리는 영적인 것에 대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지만 동시에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귄다는 것은 그 분의 뜻을 알고 그 분과 친밀해지고 심령과 삶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결코 관념적인 관계가 아니라 화목한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항상 느끼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 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우리 인생에 채워주심과 치유해주심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현실에서 평강과 형통을 보장받고 미래 또한 하나님께서 보장해주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그 관계를 통해서 날마다 친숙함이 더해갑니다.
육신과 현실적인 만족이 인생의 근본적인 만족 같아 보이지만 영적인 만족함이 있어야 결국 눈에 보이는 육신과 현실의 만족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이 즐겁고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이 즐겁다면 그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며 영적인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누구를 닮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닮고자 하는 대상을 잘 알기 위해 탐구하고 사랑하고 그가 하는 모든 것을 따라하고 좋아하는 것과 비례합니다. 예수 닮기를 힘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예수를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 지도자였던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육으로 태어난 자연인은 영적인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자연인의 상태에서는 영적인 것을 보아도 안 보이고 들어도 뭐가 뭔지 모릅니다.
 
고린도전서 213-14절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는 겁니다.
육으로 태어난 자연인은 하늘에 속한 영의 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는 영적인 생명이 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육의 눈과 생각만으로 분별하려고 한다. 그래서 육으로는 영적인 것을 분별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영적인 사람과 반대편에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만 육에 속한 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은 지 오래되었고 직분도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육에 속한 신자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자들입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여전히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고 본의든 아니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자기 인생에 장신구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필요할 때 주님을 찾기는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의 말처럼 입술로는 주님을 존경하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먼 자들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그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고 예수님이 그 마음의 중심 보좌에 앉아계셔서 영육 간의 모든 일에서 성령과 말씀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만족은 영적인 사람이 되기 전에는 결코 알 수도 없고 신령한 것을 맛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영적인 것이며 동시에 실제적인 것입니다. 영적이라는 것은 결코 영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 그 영성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영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영적 친밀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나와 내 가정, 교회와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그 뜻을 교회와 성령에 감동된 주의 종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정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 성령을 통하여 영적인 것을 분별하며 하나님과의 사귐이 풍성해지는 큰 복이 임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가정을 대표하여 한 사람이 대표로 아래와 같이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가정예배를 통하여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하옵소서. 영이신 하나님을 육신에 불과한 우리가 마치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영적인 교제와 사귐의 은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성령으로 인도해주옵소서. 말씀을 깨닫게 도와주옵소서. 무릎 꿇어 기도함으로 모든 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날마다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고 주님과 친밀감이 깊어지는 영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가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The Lord's Prayer)

(다함께 읽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예배를 마무리합니다.

가정을 대표하여 한명이 마무리 기도를 합니다. 가족끼리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안아줍니다. 서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도록 하세요!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매일매일 가정에서 드리는 당신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생각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