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잡기 (201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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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6-04 02:01 조회8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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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무씨를 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어기영차, 어기영차’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땅을 들썩이며 무순들이 돋아났다. 파종을 한 후에 늘 느끼는 것이지만 그 새싹들은 신기하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날마다 텃밭에 나가 살펴보는데 그 어린 새순의 한쪽을 달팽이가 먹었는지 한입 베어 먹혔다. 성장점이 나오기도 전에 먹히면 더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달팽이의 접근을 차단하고, 컴컴해진 밤이면 헤드랜턴을 쓰고 밤일(?) 나온 달팽이들을 잡아냈다. 그렇게 어설픈 농부(?)의 손을 통해 사랑을 받은 떡잎들이 자라더니 어느 날 제대로 된 무청들을 선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흰나비들이 무밭을 너풀거리며 날아다닌다. 그리고 살포시 어린 무청에 앉아 생존본능을 위해 자기의 알을 붙여놓는다. 아무리 쫓아도 조금 있다가 또 날아든다. 잠자리채 같은 망으로 수십 마리 잡았지만 다 끝난 게 아니었다.
또 어느 날, 텃밭에 나가보니 무청의 잎사귀들이 갉아 먹혔다.
벌레들은 자기들 먹기에 맛있고 좋은 곳만 얄밉게 여기저기 다 갉아먹어 무청들이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아침 일찍 운동을 마친 후 무가 심긴 텃밭을 나가 유심히 관찰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식사를 위해 여기저기 달라붙어 정신없이 갉아먹는 일단의 애벌레 무리들을 발견했다.
흰나비가 뿌려놓은 알들이 어느새 큰 애벌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제법 무청과 비슷한 색깔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나는 며칠에 걸쳐 아침마다 텃밭에 나가 손으로 일일이 한 마리씩 벌레잡기에 돌입했다. 그렇게 수십 마리를 잡아냈더니 이제는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무청들이 숨을 쉴 것 같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텃밭뿐이겠는가?
우리 인생과 신앙생활에 알게 모르게 달라붙어 우리의 내면과 육체와 삶을 갉아먹는 벌레들이 많이 있지 않겠는가?
벌레잡기를 소홀히 하면 내가 심고 가꾼 소중한 것들이 갉아 먹혀 앙상하게 되고,
결국 애쓴 보람도 없이 결실이 없거나 소출이 적을 수밖에 없다.

교인들이 마음에 영적 생명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말씀의 씨앗들이 싹이 나고 은혜를 받으면서 영적으로 성장하여 믿음이 자라는 모습을 볼 때의 그 기쁨은 텃밭의 무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마귀는 우리가 말씀을 받고, 믿음이 자라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말씀의 씨앗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쪼아 먹고, 어린 신앙을 갉아먹고, 여기저기 알을 붙여 놓아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도중에도 이런저런 벌레들이 달라붙어 그 믿음을 앙상하게 만들고, 누렇게 변질시켜 버린다.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달라붙어 영혼과 인생을 피폐하게 하는 그 벌레들이 내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잡아야 하는데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어린 교인들은 벌레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벌레를 잡기 위해 자기를 건드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알곡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벌레를 잡아내야 하는 고도의 영적 기술을 위해 목자로서, 영적 농부로서 깊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지켜보고 또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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