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가지의 물과 같은 사람 (201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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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7-18 18:23 조회1,7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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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집 마당은 다용도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아침에 잠에서 일어나면 곧바로 나가 세수를 했고, 더운 여름날에는 웃통을 벗고 등목을 했고, 늦은 밤에 공부하다가 졸음이 밀려오면 물 한바가지 떠서 머리에 부어 정신을 차렸고, 여름밤에는 평상에 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던 곳이었다.
그곳에는 정겨웠던 펌프가 있었다. 지금은 상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지만 당시는 집 마당에 있던 펌프를 통해 식수에서부터 필요한 모든 물을 공급받았다. 펌프는 지하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기구였는데 그냥 펌프질만 하면 물이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펌프 옆에 있는 물을 한 바가지쯤 부어야 했다. 그 한 바가지의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펌프 밑의 풍성한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마중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저마다 원하는 게 있다. 그것을 얻기 원한다면 삶의 마중물이 준비되어야 하고, 준비된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넉넉하고 풍요로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갈증을 느끼는 것은 인생의 마중물이 없거나 붓지 않기 때문이다. 펌프에 있어서 한 바가지의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듯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마중물이 있어야 펌프질을 할 수 있고 콸콸 쏟아지는 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마중물은 펌프에 부어서 없어지는 것 같아도 버려지는 물이 아니다. 펌프 속에 부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아도 땅 밑의 물을 끌어올리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 마음에 마중물이 있는 사람만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잠긴 듯이 고여 있는 정수(精髓)를 퍼 올릴 수 있다.
그 처음물이 그 사람의 격과 질을 높인다.
모든 공동체와 사람 사이에도 마중물과 같은 존재가 있다. 있는 듯 없는 듯해도 필요할 때면 꼭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사람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 힘을 끌어내는 사람, 자기는 희생하고 자기는 사라지는 그런 사람이 마중물과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대부분 마중물의 역할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중물은 항상 준비되어야 하고, 항상 먼저 부어져야 하고, 때로는 공로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민자의 삶은 각박해서 자기를 돌보기도 빠듯해한다. 적어도 영주권이라는 가시적인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잠재적인 불안과 염려가 떠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열등감에, 어떤 이는 우월감에 빠져서 사람을 기피한다. 어쩌면 이방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고뇌이며 한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조차도 산술적인 계산과 두려움이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불 밝혀주는 친절한 마중물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교민사회와 모든 한인 공동체가 밝아질 것이다. 내 마음을 털고, 내 지갑을 열지 않고서 좋은 세상, 좋은 날을 입으로 만들 수는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을 하나님께로 이끌어주는 마중물이셨다. 주님은 죽어서 없어진 것 같아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영원토록 하나님의 사람들 안에, 그리고 그들의 삶속에 살아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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