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과 꽃향기 (200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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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12-28 19:29 조회2,0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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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타우랑가에 온지 벌써 만 3년이 되어간다.
여름날의 12월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어느새 당연하게 다가온다.
여름날에 겨울날을 생각하고 그리워해본다.
온화한 날씨 탓에 겨울이 되어도 눈이 내리지도 않고, 삭풍(朔風)이 불지도 않는다.
좋은 기후에 감사하면서도 한국에서의 차가운 북풍한설(北風寒雪)이 그립다.
전신을 세차게 후려치는 겨울 바닷가의 바람, 얼굴을 쨀 것같이 스쳐지나가는 면도날 같은 칼 바람, 숨을 들이마시면 콧속이 ‘쩌억’ 하고 얼어붙는 것 같은 차가운 공기, 그리고 추위에 웅크려지는 몸의 긴장 …
겨울이 되면 그저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그 겨울 바람과 추위가 그립다. 겨울은 사계(四季) 가운데 가장 백미(白眉)의 계절이다.
이곳의 온화하고 따뜻한 기후가 사람을 낙천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유난히 힘든 것을 참지 못하는 세대, 조그마한 힘든 일에도 입술의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은 유혹에 자신을 내맡기는 우리네들의 연약함에 가슴이 운다.

1990년인가 설악산을 등반한 적이 있다.
강원도 용대리에서부터 백담산장을 넘어 설악동으로 넘어가는 코스였다.
소청봉 산장에서 여정을 풀고 잠을 자야 한다는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대청봉 밑의 중청봉에 텐트를 쳤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우처럼 웅크렸다. 그 바람 탓에 중청봉의 나무들은 위로 높게 크지를 못하고 낮게 옆으로 퍼져나가는 형태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바람에게서 배우는 겸손함이 아름다웠다.

2007년 한 해의 바람 끝이 보인다.
내 삶에 불어 닥친 바람들을 성찰해보자.
그 바람이 단순한 바람이었는지, 아니면 나를 한 단계 더 올리고, 더욱 깊어지게 하는 바람이었는지 …
인생의 바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사람은 큰다.

작가 정호승은《스무살을 위한 사랑의 동화》에서 엄마 매화나무와 아가 매화나무의 대화를 통해 인생의 바람과 추위에 대한 의미를 말하고 있다.

『그날 밤, 엄마 매화나무가 어린 매화나무에게 말했다.
"아가야, 이제 너도 알 거다.
우리가 왜 겨울바람을 참고 견뎌야 했는지를.
우리 매화나무들은 살을 에는 겨울바람을 이겨내어야만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단다.
네가 만일 겨울을 견디지 못했다면 넌 향기 없는 꽃이 되고 말았을 거야.
꽃에 향기가 없다는 것은 곧 죽음과 마찬가지야.”』

겨울바람이 불 때는 떨거나 움츠리지 말고 기뻐해야 한다.
지금은 바람이 거세어도 머지않아 꽃은 곧 피어나고, 지금은 살이 에이고 아파도 그럴수록 꽃향기는 안으로 안으로 더욱 깊어져 때가 되면 눈밭에 핀 아름다운 설중매(雪中梅)의 향기는 멀리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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