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좋은 친구를 만났다.
시야에 펼쳐 보이는 잔디에서 햇살을 받은 이슬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이슬이 아니고 서리였다.
그 날 아침의 서리는 내게 시상(詩想)을 주었다.
뉴질랜드에서의 낮과 밤의 큰 일교차가 어느 날 서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슬로 세상에 내려왔으나 차가운 공기는 밤새 이슬을 서리로 만들었다.
우리네의 사랑을 보면 때로는 이슬 같고, 때로는 서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슬과 서리, 서리와 이슬 같은 삶의 애환(哀歡)의 교차 속에서 사랑은 깊어지고 무르익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삶에 어느 날은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을 보면서 그 속에 온 우주가 담겨 있음을 보고 감탄스러워하고 행복해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어느 날은 서릿발 같은 냉랭함이 마음과 전신을 휘감고 싸늘하게 할 때 인생이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사랑의 이중성이다.

길옆, 공원의 잔디위에 펼쳐져 있는 서리에게 가까이 갔더니 내 발밑에서 풀잎에 맺힌 서리들이 부서지며 아프다고 소리를 내는 듯했다.
나는 신기하고 좋아서 가까이 손을 내밀어 만졌는데 서리는 내 손안에서 이내 녹아버린다.
내 발밑에서, 내 손안에서 녹아버리는 서리를 보면서 나는 좋아서 가까이 했는데 서리는 내 사랑을 받고 그만 이슬로 변해버렸다.
서리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순수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 누군가에게나 똑같은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괜찮은데 상대는 안 괜찮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배려하면 보다 좋은 사랑의 정원을 가꿀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 든다.

김용택의 <연애시집>에 있는 글귀처럼 “사랑이란 이슬이 서리가 되는 아픔이고, 서리가 이슬이 되는 그리움”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항상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기를 각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아픔이 올 때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그 사랑을 존속시키는 것은 사랑의 기술이다.
사랑을 기술이라 표현함은 사랑을 비하함이 아니다.
이슬 같은 때의 평화와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 서리 같은 아픔과 불쾌함, 분노를 해결할 수 있는 감정처리의 기술은 농익은 사랑을 위해서 꼭 필수적인 것이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감정만으로는 사랑을 이어갈 수도 만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사랑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은 분명 사랑의 기술이다. 

이슬과 서리, 서리와 이슬이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사랑의 애증(愛憎) 역시 본래 둘이 아닌 하나임을 기억하고 이슬과 서리의 상태, 또는 상황을 믿음으로 지혜로움으로 풀어 나갈 때 아픔의 깊이만큼, 그리움의 넓이만큼 더 성숙해지는 것이 사랑이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