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판자가 되지 않으련다.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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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1-01 13:14 조회73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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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인내가 필요하다.
조급함은 조악함을 만들어내기에 날마다 답답한 현실을 보면서도 손에 든 칼을 내려놓는다.
그래야 마침내 웃을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다림과 인내, 그것만이 사람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깨닫게 된다.
뒷마당에 두 개의 배나무가 있다. 하나는 뉴질랜드 품종이고 또 하나는 한국의 나주 배이다.
아마도 6,7년 전 쯤으로 기억하는데 한국 배를 무척 맛있게 먹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씨앗을 몇 개 심었는데 싹이 나기에 아낌과 사랑으로 길렀다. 올 해 뉴질랜드 품종은 눈으로 보기에 호사스러울 정도로 배꽃이 만개하여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꽃 속에 숨겨진 앞으로 많이 맺히게 될 열매들이 상상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산 배나무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여전히 어린 나무이다. 물론 접붙임을 하지 않았으니 그때 먹었던 크고 좋은 배는 아니고 과일이 열려도 돌배이겠지만 문제는 단 한 번도, 아직까지 단 한 개의 꽃도 피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 한 개의 꽃도 피지 않았음은 단 한 개의 열매도 없다는 말이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웰컴베이(Welcome Bay)에서 파이스파(Pyes Pa)로 이사할 때 뽑아 이식했고, 또 지난 해 12월에 파이스파에서 지금의 오로피(Oropi)로 이사할 때 다시 뽑아 이식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그래서 몸살을 앓느라고, 뿌리를 내리고 적응하느라고 더딘 것일까? 작년에 이사를 오면서 앞마당에 심었던 칼라(Calla) 꽃이 도대체 언제 나올까 했더니 한 20여개가 이제 고개를 내민다. 앞으로 꽃이 필 것이다. 땅속에, 나무 살 속에 숨어 있던 생명들이 자기의 존재를 살아있음으로,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 누가복음 13:6-9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자연 만물 중에 사람만큼 늦게 성장하고, 그 속이 더디게 여무는 존재는 없다. 가장 느리다.
그래서 가장 오래 기다리고 인내해야 한다.
전도서의 말씀처럼 천하범사에 다 때가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런데 그 때가 하나님의 때가 아닌 ‘나의 때’에 시간을 맞추다보면 기다림과 인내를 잃게 되고 불에 덴 것 같은 조급함에 땅을 파고, 뽑아내고, 잘라버린다.
나는 심판자가 되지 않으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눈물로 기도한다.
조급함은 조악함을 만들어내기에 날마다 답답한 현실을 보면서도 손에 든 칼을 내려놓는다.
그래야 마침내 웃을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다림과 인내, 그것만이 사람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깨닫게 된다.
뒷마당에 두 개의 배나무가 있다. 하나는 뉴질랜드 품종이고 또 하나는 한국의 나주 배이다.
아마도 6,7년 전 쯤으로 기억하는데 한국 배를 무척 맛있게 먹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씨앗을 몇 개 심었는데 싹이 나기에 아낌과 사랑으로 길렀다. 올 해 뉴질랜드 품종은 눈으로 보기에 호사스러울 정도로 배꽃이 만개하여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꽃 속에 숨겨진 앞으로 많이 맺히게 될 열매들이 상상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산 배나무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여전히 어린 나무이다. 물론 접붙임을 하지 않았으니 그때 먹었던 크고 좋은 배는 아니고 과일이 열려도 돌배이겠지만 문제는 단 한 번도, 아직까지 단 한 개의 꽃도 피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 한 개의 꽃도 피지 않았음은 단 한 개의 열매도 없다는 말이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웰컴베이(Welcome Bay)에서 파이스파(Pyes Pa)로 이사할 때 뽑아 이식했고, 또 지난 해 12월에 파이스파에서 지금의 오로피(Oropi)로 이사할 때 다시 뽑아 이식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그래서 몸살을 앓느라고, 뿌리를 내리고 적응하느라고 더딘 것일까? 작년에 이사를 오면서 앞마당에 심었던 칼라(Calla) 꽃이 도대체 언제 나올까 했더니 한 20여개가 이제 고개를 내민다. 앞으로 꽃이 필 것이다. 땅속에, 나무 살 속에 숨어 있던 생명들이 자기의 존재를 살아있음으로,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 누가복음 13:6-9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자연 만물 중에 사람만큼 늦게 성장하고, 그 속이 더디게 여무는 존재는 없다. 가장 느리다.
그래서 가장 오래 기다리고 인내해야 한다.
전도서의 말씀처럼 천하범사에 다 때가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런데 그 때가 하나님의 때가 아닌 ‘나의 때’에 시간을 맞추다보면 기다림과 인내를 잃게 되고 불에 덴 것 같은 조급함에 땅을 파고, 뽑아내고, 잘라버린다.
나는 심판자가 되지 않으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눈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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