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고 … (201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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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0 06:59 조회5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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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사람은 바보 같고 겸손한 사람은 무능하다는 인식은 안타까운 비밀이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직하고 겸손해야 함을 알면서도 정직하고 겸손해서는 못 사는 세상, 그렇게 해서는 못 살 것 같은 세상이라는 가치 혼란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래서 적당히 정직하고 그저 겸손한 척 하는 선에서 삶을 에둘러 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법정에 서거나 청문회 자리에 나온 사람들, 또는 심문 받을 때 사람들은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아니다’ 등등의 말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으려고 최대한 부정직하게 말한다. 자신의 부정직했었음을 정직이라고 강변한다. 왜 그럴까? ‘정직하면 죽는다. 정직하면 망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거짓을 말하게 하고 피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허물을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둘러씌운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아닌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말을 한다. 금방 들통 날 텐데 끝까지 부정직하게 말한다.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우리도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다. 자신의 부끄러움이나 양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거짓의 말을 그 자리에서 지어낸다. 거짓말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사람의 눈에도 다 보이는데 하나님 앞에서까지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용기가 아닌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변했다. 변한 것이다.
요즘 날씨는 봄날이 아니다. 봄은 없어지고 가을과 여름이 섞인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은 가을이고 낮에는 불볕더위에 간혹 후덥지근하고 습도가 높아 끈적거릴 때는 완전 여름이다.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뭔가 변한 봄인 것은 분명하다. 날씨뿐이겠는가? 살아보니까 다 변한다. 안 변하는 게 없다. 자연도 사람도 환경도 몸과 마음도 다 변했고 변하고 있다. 무엇이 변한다 한들 사람처럼 잘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돈이든 뭐든 무엇을 조금 더 또는 더 많이 가지기만 해도 정직함과 겸손함은 달아난다. 혹 너무 가진 것이 없어 정직하지 못할 수도 있고 오기 때문에 겸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은 뭐가 되었든 가지거나 위치가 달라지면 사람이 달라진다.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누구를 가릴 것도 없이 신기하리만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짐으로 인해 정직함과 겸손함을 잃는다. 소유와 지위를 얻은 대가치고는 너무 큰 가치를 잃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서 보면 전에 그렇게 가치를 부여했고 몸과 마음과 삶을 기울였던 많은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과 회한이 찾아올 때가 있다.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명감과 압박감에 수시로 나 자신을 채찍질해야만 했고 또 누군가를 독려하고 채근해야만 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이 그다지 없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무쌍하게 바뀌는 변함 속에서 안 변하려고 몸부림치는 게 있다. 그것은 정직함과 겸손함이다. 살아 보면 살수록, 알면 알수록, 행하면 행할수록 ‘정직’과 ‘겸손’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지키기에 내 자신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 진지할 수밖에 없고 또한 날마다 막바지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하니까.
정직한 자가 끊어지고 겸손한 자가 자취를 감춰버리는 시대와 현실 속에서 과연 마지막까지 정직함과 겸손함을 지킬 수 있을지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다고 오늘도 고백한다. 진심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직하고 겸손해야 함을 알면서도 정직하고 겸손해서는 못 사는 세상, 그렇게 해서는 못 살 것 같은 세상이라는 가치 혼란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래서 적당히 정직하고 그저 겸손한 척 하는 선에서 삶을 에둘러 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법정에 서거나 청문회 자리에 나온 사람들, 또는 심문 받을 때 사람들은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아니다’ 등등의 말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으려고 최대한 부정직하게 말한다. 자신의 부정직했었음을 정직이라고 강변한다. 왜 그럴까? ‘정직하면 죽는다. 정직하면 망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거짓을 말하게 하고 피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허물을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둘러씌운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아닌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말을 한다. 금방 들통 날 텐데 끝까지 부정직하게 말한다.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우리도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다. 자신의 부끄러움이나 양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거짓의 말을 그 자리에서 지어낸다. 거짓말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사람의 눈에도 다 보이는데 하나님 앞에서까지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용기가 아닌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변했다. 변한 것이다.
요즘 날씨는 봄날이 아니다. 봄은 없어지고 가을과 여름이 섞인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은 가을이고 낮에는 불볕더위에 간혹 후덥지근하고 습도가 높아 끈적거릴 때는 완전 여름이다.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뭔가 변한 봄인 것은 분명하다. 날씨뿐이겠는가? 살아보니까 다 변한다. 안 변하는 게 없다. 자연도 사람도 환경도 몸과 마음도 다 변했고 변하고 있다. 무엇이 변한다 한들 사람처럼 잘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돈이든 뭐든 무엇을 조금 더 또는 더 많이 가지기만 해도 정직함과 겸손함은 달아난다. 혹 너무 가진 것이 없어 정직하지 못할 수도 있고 오기 때문에 겸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은 뭐가 되었든 가지거나 위치가 달라지면 사람이 달라진다.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누구를 가릴 것도 없이 신기하리만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짐으로 인해 정직함과 겸손함을 잃는다. 소유와 지위를 얻은 대가치고는 너무 큰 가치를 잃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서 보면 전에 그렇게 가치를 부여했고 몸과 마음과 삶을 기울였던 많은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과 회한이 찾아올 때가 있다.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명감과 압박감에 수시로 나 자신을 채찍질해야만 했고 또 누군가를 독려하고 채근해야만 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이 그다지 없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무쌍하게 바뀌는 변함 속에서 안 변하려고 몸부림치는 게 있다. 그것은 정직함과 겸손함이다. 살아 보면 살수록, 알면 알수록, 행하면 행할수록 ‘정직’과 ‘겸손’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지키기에 내 자신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 진지할 수밖에 없고 또한 날마다 막바지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하니까.
정직한 자가 끊어지고 겸손한 자가 자취를 감춰버리는 시대와 현실 속에서 과연 마지막까지 정직함과 겸손함을 지킬 수 있을지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다고 오늘도 고백한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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