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時差) 그리고 시차(視差) (2017. 0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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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stor 작성일17-09-24 15:29 조회7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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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아서 시차(時差)라는 것은 말로만 들었지 잘 몰랐다.
지난 4월 안식년으로 1차 한국에 왔을 때에도 시차를 거의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안식년으로 두 번째 한국을 방문해서는 시차를 심하게 경험하고 있다.
밤이 깊어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이 잠 못 들게 하는 것도 있지만 12시가 다 되거나 넘어야 잠이 온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가 새벽 2시, 뉴질랜드 시간으로 새벽 5시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정신마저도 또렷해진다.
내가 섬기고 있는 타우랑가 샘물교회의 새벽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날마다 잠에서 깨어나는 그 시간이다.
너무 이른 새벽 시간에 잠이 깼음에도 다시 잠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세수를 하고 나도 그 날의 새벽기도를 쌓는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여서 그런지 낮에 시도 때도 없이 잠깐씩 잠이 몰려오면 그 쪽잠에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긴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눈꺼풀' 이라고 했던가?
세상에서 제일 염치없는 것이 '잠' 이라고 했던가?
눈꺼풀이 한번 내려오기 시작하면 엄청 무거워서 그게 뜻대로 잘 올라가지지가 않는다.
여기 이 자리에서는, 지금 이 상황에서는 잠이 오면 안 되고 잠들면 안 되는데 잠의 기운이 몸을 덮어버리면 이겨내지를 못한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잠깐이지만 그야말로 죽는 것과 같은 상태로 들어간다.
여행은 시차를 느끼지 않아야 피로감이 덜하고 좋지만 참된 신앙은 세상과 시차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과 같은 시간 속에 사는 것 같아도 다른 시간에 살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과 같은 공간에 사는 것 같아도 다른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만약 그 영적 시차 때문에 삶이 복잡하고 피곤해진다면 그것이 바로 영적 전쟁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힘들고 불편하게 살고 싶지 않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골치 아픈 것은 싫다.
세상과 다르게 살고 싶지 않다.
그냥 편하게 믿고 싶다.
믿음대로 살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영적인 시차(時差)가 생기면 삶의 현실에서 어쩌면 겪지 않아도 될 크고 작은 갈등을 느끼게 된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상황인데도 세상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 영적인 시차(時差)를 경험할 때 우리는 머뭇거리거나 뒤로 돌아서거나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야 말로 오히려 내면세계가 확고해지고 신앙에 신령한 살이 오르는 기회이다.
내가 믿는 것이 진짜이고 확실한 것인지 그런 갈등과 혼란과 번민과 회의(懷疑)를 통해서 확립되고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복음을 통해서 값없이 은혜로 주신 구원이 얼마나 보배로운 것인지 깨달으면 다르게 사는 것이 두렵지 않다.
믿음 하나 때문에 영적 시차(시간의 차이)를 느끼고 인생관과 세계관의 시차(視差-시각의 차이)가 다른 것이 우리 예수인의 삶이다.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고 갈등해야 한다.
고민하면서 믿어야 한다.
그것이 바르게 그리고 잘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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