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The Apostle's Creed)
(다함께 읽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들어가는 기도
가정을 대표하여 한 사람이 오늘의 예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찬양
(다함께 부릅니다)
35장(통일 50장) ♬ 큰 영화로신 주
큰 영화로신 주 이 곳에 오셔서 이 모인 자들로 주 백성 삼으사
그 중에 항상 계시고 그 중에 항상 계시고 큰 영광 나타내소서
2.
이 백성 기도와 또 예물 드림이 향내와 같으니 곧 받으옵소서
주 예수 크신 복음을 주 예수 크신 복음을 만백성 듣게 하소서
3.
또 우리 자손들 다 주를 기리고 저 성전 돌같이 긴하게 하소서
주 구원하신 능력을 주 구원하신 능력을 늘 끝날까지 주소서
4.
주 믿는 만민이 참 진리 지키며 옛 성도들 같이 주 찬송하다가
저 천국 보좌 앞에서 저 천국 보좌 앞에서 늘 찬송하게 하소서
아멘
성경 : 창세기 4장 1-8절
말씀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경건의식이며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최고봉의 모습 또한 예배로 나타납니다.
예배는 주일에 교회에 와서 한 두 시간 때우고 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비롯하여 건강한 신앙생활의 유무를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병들었거나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예배에서부터 그 잘못됨이 드러납니다.
일단 마음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마음이 비틀어지면 예배가 비틀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모든 신앙생활이 다 빗나가기 시작합니다.
비극은 거기서, 즉 예배가 잘못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왜 자꾸 옛날 사람들에게서 기억되는 것일까요?
인정하기 싫지만 예배가 하찮게 된 오늘 우리 시대의 영적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과 비애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예배는 교회생활의 일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주일예배로 모든 신앙생활이 종료됩니다. 그것이 형식인지, 위안인지, 자기만족인지 모르겠으나 예배가 종교생활의 한 측면으로 일그러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그 시간에 제법 권세 있는 사람이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린다고만 해도 예배의 자세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가 예배드릴 때 그 시간, 그 자리에 함께하신다면 여러분의 예배 자세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한다고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신의 눈이 보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가 예배드릴 때 항상 그 시간, 그 자리에 성령으로 와 계십니다. 모르거나 의식하지 못하면 전혀 못 느낍니다.
내가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를 받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가 불경건하면 모든 신앙의 삶이 다 불경건해집니다.
예배는 살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에 임하는 자신의 심령, 예배를 드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성찰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가르쳐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예배의 갱신은 곧 내가 사는 길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는 비결입니다.
예배가 죽으면 심령이 시들해집니다. 무기력해집니다. 생명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위기는 곧 모든 것의 위기로 직결됩니다.
교회 뜰만 밟고 왔다가 가는 신앙은 자기 신앙을 물론이고 예배 실패자들이 교회 안에 가득해지면 죽은 교회가 됩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은 각각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어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렸고 아벨은 양을 잡아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열납하셨습니다.
예배가 다 같은 예배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 말씀 자체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1. 속죄의 예배를 드리세요.
✱ 이사야 59:1-2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죄가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가 하나님과의 교통을 막고, 생명줄을 막고 공급을 막고 은혜를 막고 갈라놓았습니다.
✱ 히브리서 9: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히브리서 9:13-14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가인이 곡식으로 드린 제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예배)는 속죄를 기본 원칙으로 드리는 것이기에 반드시 내 죄를 대속한 피 흘림의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고 드려지는 예배만을 받으십니다.
죄를 품고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거절하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내 지은 죄를 스스로 해결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 위에 예수님의 십자가 붉은 피가 덮여 있습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십자가를 의지하며 예배드려야 합니다.
2. 예배에 실패하면 죄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사와 제물만 받으시고 자기의 제사와 제물은 받지 않으시자 가인은 불쾌했습니다. 무척 기분이 나빴고 속이 상했습니다.
가인을 영성이 없는 사람으로 보면 안 됩니다.
그는 내가 드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는지 안 받으셨는지, 누구의 예배를 받으셨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영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드린 예배 정말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였는지 우리 심령과 신앙 양심은 그걸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만약 내가 드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회개해야 옳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예배에 실패하고 실패한 것에 대한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을 때 가인의 안색은 변했습니다. 분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이 드린 예배가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으셨다는 것에 대해 가인이 분한 감정이 일어났다면 그래도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가아 보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으면 비뚤어지고 삐딱해진 심령 그대로 가면 안 됩니다. 선한 뜻과 목적이 있다면 그에 합당하게 바뀌고 변화되어야 마땅합니다. 가인이 아벨에 대해 분한 마음을 가진 것은 아벨보다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 대하여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를 미워할 일입니까? 자기가 마음을 고쳐먹고 변화되어야 할 일입니다.
사람 얼굴에는 마음의 상태가 나타납니다.
무언가 내 뜻대로 안 됐을 때 특히 얼굴에 역력한 표정이 나타납니다. 자기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얼굴에 다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곧 행동할 것을 아셨습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난 죄는 마음이 굳어지면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을 아신 하나님은 가인을 권면하십니다.
✱ 창세기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잘못을 알면서도 잘못을 고치지 않고 계속 비뚤어진 마음으로 가면 반드시 죄를 짓게 됩니다.
죄는 우리가 행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걸려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는 말씀을 허투루 들으면 안 됩니다.
마치 사자가 사냥을 위해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죄가 우리 앞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죄에게 당합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와 권면에도 불구하고 자기감정대로 해 버리고 맙니다.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결정적인 죄를 짓지 않도록 말씀하십니다.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경고와 권면을 무시할 때 큰 죄를 짓게 됩니다.
내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고 모든 탓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그러지 마세요.
한번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 빨리 하나님께로 전인격을 돌리셔야 합니다.
아직 말씀이 내게 임하는 동안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배, 어떤 순간, 어떤 상황일지라도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를 구하는 자의 자세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예배가 잘못되면 그 다음 더 큰 죄로 끌려 들어갑니다.
오늘도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가정을 대표하여 한 사람이 대표로 아래와 같이 기도합니다.)
죄와 허물을 자백합니다.
하나님과 예배의 관계가 소통하게 하옵소서.
예배를 가로막는 모든 죄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오늘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옵소서.
성령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The Lord's Prayer)
(다함께 읽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예배를 마무리합니다.
가정을 대표하여 한명이 마무리 기도를 합니다. 가족끼리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안아줍니다. 서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도록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