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목회 칼럼 (13) 목회-말씀 목회, 무릎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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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stor 작성일22-05-16 14:45 조회33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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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이 한 마디의 단어에 주님은 내 삶을 묶어 놓으셨다.
목회는 죽는 날까지의 사명이며 또한 삶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의 숙제이다.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목회를 잘하는 것일까?
모든 목회자들이 수도 없이 생각하고 날마다 고민하고 부둥켜 안고 사는 제목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학부와 신학원의 신학 과정을 공부한 것 외에 괄목할만한 다른 큰 학업의 성취는 없다. 또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목회적인 양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거나 목회현장에 도입한 적도 없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놓치지 않았고 중심을 지키려고 지금까지도 몸부림치는 것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의 균형이다. 말씀을 잘 전한다고 할 수도 없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할 수도 없지만 설교자로서 말씀 가운데 거하기를 힘쓰고 목회자로서 기도하기를 놓치지 않고 있는 중이다. 설교자로서의 설교와 목회자로서의 기도는 목사를 목사 되게 하며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 목사가 개척 교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고(故) 옥한흠 목사님을 찾아 뵙고 “목사님, 단독 목회를 시작하는 저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 달라” 는 부탁을 드렸을 때 옥한흠 목사님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교 준비가 안 된 채로 절대 강단에 서지 마라. 그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한 번 그렇게 준비 없이 강단에 섰다가 망신을 당하고 수치를 당한다면 그것만큼 복된 일은 없다. 하지만 대개는 그동안 해 오던 관록이 있기 때문에 설교 준비 없이 강단에 서도 별 문제 없이 말씀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다.”
마음을 후벼 파는 조언은 같은 설교자인 내 마음에도 각인되었다.
완벽한 설교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돌이켜보건대 설교 초년생부터 지금까지 설교를 준비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소홀히 한 적은 없다. 설교자에게는 삶의 일상이 전부 설교의 재료이고 설교는 어느 정해진 시간이 아닌 매일 시간마다 틈날 때마다 준비된다. 그렇게 준비된 설교의 재료들이 한 편의 설교를 위해 서재에서 맞춰져 간다. 목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으뜸이며 설교는 목사 된 자의 가장 주된 사역이고 교인들은 설교를 통해서 가장 큰 은혜와 도전과 영향력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학교에서 설교학은 배웠지만 설교를 몰랐기에 교육 전도사 시절 많은 습작과 카피, 참조 등의 설교를 했던 때부터 설교에 대해서 조금 눈이 떠진 지금까지도 설교는 어렵고 여전히 쉽지 않다. 다만 베드로전서 4:11a의 말씀처럼 설교를 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같이 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밑밥이나 낚싯밥으로 설교를 던져본 적은 없다. 설교에 대한 목사의 생각은 진실해야 하며 목사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기도를 통해 설교로 탄생한다.
설교 준비는 끝이 없다. 아무리 원고의 문장을 다듬고 많은 내용들을 담은 것 같은데도 만족함이 없다. 그래서 고치고 또 고치고 버리고 또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도 많다. 설교 원고로서는 크게 나무랄 데 없고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뭔가 2% 채워지지 않은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강단에 서게 될 때도 있는데 강단의 설교대에 원고를 펼쳐 놓으면 설교를 준비할 때는 전혀 와 닿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던 설교의 맥과 상이 떠오른다. 누가 옆에서 막 밀어 넣어주는 것 같다. 설교자를 위해서라기 보다도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성령께서 설교자에게 역사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설교를 하면서도 동시에 기도를 하게 된다. 강단에 서면 설교의 원본인 그 말씀을 말씀 되게 하는 성령의 역사를 더 크게 갈망하게 된다.
목회의 능력은 무릎에서 나온다.
모든 목회자가 그렇겠지만 내게도 강단에 늘 깔려 있는 기도 방석이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중심과 간절함이 기도 방석에 무릎을 꿇게 만든다.
하나님과 통하고 교회와 통하고 교인들과 통하는 자리이며 또한 통하게 하는 자리이다.
모든 문제와 고통과 아픔까지 통하게 하는 자리가 기도 자리이다.
목사로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3만(慢)”, 즉 영적 비만, 영적 교만, 영적 태만에 대한 조심이다.
기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3만(慢)”은 아주 자연스럽게 현실이 된다. 그리고 목회 현장에 바람 잘 날이 없게 된다. 기도는 방패인 동시에 어리석음을 쫓아내는 가장 최선의 공격이다. 그리고 설교를 받쳐주는 가장 탁월한 후원의 능력이기도하다.
무릎 목회는 영적 관제탑과 같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기도는 만사(萬事)다.
귀에 익은 말이겠지만 마음에 새겨 담고 기도하면 만사가 어떻게 되는 지를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기도는 허공을 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막을 것을 막고 불러 들일 것을 부르신다.
기도가 채워지지 않은 일은 그렇게 열망했고 기회가 왔지만 성취되지 않고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기도로 준비한 일은 우리의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되게 하신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교인들은 목사의 설교 소리와 기도 소리를 듣고 자란다.
말씀 목회와 기도 목회의 균형을 통해 목사와 목회자로서의 사역이 건강해지고 건강한 주의 종들을 통해서 교회와 성도들 역시 바르고 건강하게 되기를 바란다.
필력이라고 할 것도 없이 부족한 사람에게 2016년 한 해 “목회” 라는 주제로 글을 실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여러 모로 배려해 주신 크리스천 라이프 신문사의 대표 장명애 사모와 편집을 총책임하시는 이승현 목사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이 한 마디의 단어에 주님은 내 삶을 묶어 놓으셨다.
목회는 죽는 날까지의 사명이며 또한 삶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의 숙제이다.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목회를 잘하는 것일까?
모든 목회자들이 수도 없이 생각하고 날마다 고민하고 부둥켜 안고 사는 제목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학부와 신학원의 신학 과정을 공부한 것 외에 괄목할만한 다른 큰 학업의 성취는 없다. 또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목회적인 양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거나 목회현장에 도입한 적도 없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놓치지 않았고 중심을 지키려고 지금까지도 몸부림치는 것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의 균형이다. 말씀을 잘 전한다고 할 수도 없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할 수도 없지만 설교자로서 말씀 가운데 거하기를 힘쓰고 목회자로서 기도하기를 놓치지 않고 있는 중이다. 설교자로서의 설교와 목회자로서의 기도는 목사를 목사 되게 하며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 목사가 개척 교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고(故) 옥한흠 목사님을 찾아 뵙고 “목사님, 단독 목회를 시작하는 저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 달라” 는 부탁을 드렸을 때 옥한흠 목사님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교 준비가 안 된 채로 절대 강단에 서지 마라. 그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한 번 그렇게 준비 없이 강단에 섰다가 망신을 당하고 수치를 당한다면 그것만큼 복된 일은 없다. 하지만 대개는 그동안 해 오던 관록이 있기 때문에 설교 준비 없이 강단에 서도 별 문제 없이 말씀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다.”
마음을 후벼 파는 조언은 같은 설교자인 내 마음에도 각인되었다.
완벽한 설교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돌이켜보건대 설교 초년생부터 지금까지 설교를 준비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소홀히 한 적은 없다. 설교자에게는 삶의 일상이 전부 설교의 재료이고 설교는 어느 정해진 시간이 아닌 매일 시간마다 틈날 때마다 준비된다. 그렇게 준비된 설교의 재료들이 한 편의 설교를 위해 서재에서 맞춰져 간다. 목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으뜸이며 설교는 목사 된 자의 가장 주된 사역이고 교인들은 설교를 통해서 가장 큰 은혜와 도전과 영향력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학교에서 설교학은 배웠지만 설교를 몰랐기에 교육 전도사 시절 많은 습작과 카피, 참조 등의 설교를 했던 때부터 설교에 대해서 조금 눈이 떠진 지금까지도 설교는 어렵고 여전히 쉽지 않다. 다만 베드로전서 4:11a의 말씀처럼 설교를 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같이 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밑밥이나 낚싯밥으로 설교를 던져본 적은 없다. 설교에 대한 목사의 생각은 진실해야 하며 목사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기도를 통해 설교로 탄생한다.
설교 준비는 끝이 없다. 아무리 원고의 문장을 다듬고 많은 내용들을 담은 것 같은데도 만족함이 없다. 그래서 고치고 또 고치고 버리고 또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도 많다. 설교 원고로서는 크게 나무랄 데 없고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뭔가 2% 채워지지 않은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강단에 서게 될 때도 있는데 강단의 설교대에 원고를 펼쳐 놓으면 설교를 준비할 때는 전혀 와 닿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던 설교의 맥과 상이 떠오른다. 누가 옆에서 막 밀어 넣어주는 것 같다. 설교자를 위해서라기 보다도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성령께서 설교자에게 역사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설교를 하면서도 동시에 기도를 하게 된다. 강단에 서면 설교의 원본인 그 말씀을 말씀 되게 하는 성령의 역사를 더 크게 갈망하게 된다.
목회의 능력은 무릎에서 나온다.
모든 목회자가 그렇겠지만 내게도 강단에 늘 깔려 있는 기도 방석이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중심과 간절함이 기도 방석에 무릎을 꿇게 만든다.
하나님과 통하고 교회와 통하고 교인들과 통하는 자리이며 또한 통하게 하는 자리이다.
모든 문제와 고통과 아픔까지 통하게 하는 자리가 기도 자리이다.
목사로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3만(慢)”, 즉 영적 비만, 영적 교만, 영적 태만에 대한 조심이다.
기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3만(慢)”은 아주 자연스럽게 현실이 된다. 그리고 목회 현장에 바람 잘 날이 없게 된다. 기도는 방패인 동시에 어리석음을 쫓아내는 가장 최선의 공격이다. 그리고 설교를 받쳐주는 가장 탁월한 후원의 능력이기도하다.
무릎 목회는 영적 관제탑과 같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기도는 만사(萬事)다.
귀에 익은 말이겠지만 마음에 새겨 담고 기도하면 만사가 어떻게 되는 지를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기도는 허공을 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막을 것을 막고 불러 들일 것을 부르신다.
기도가 채워지지 않은 일은 그렇게 열망했고 기회가 왔지만 성취되지 않고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기도로 준비한 일은 우리의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되게 하신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교인들은 목사의 설교 소리와 기도 소리를 듣고 자란다.
말씀 목회와 기도 목회의 균형을 통해 목사와 목회자로서의 사역이 건강해지고 건강한 주의 종들을 통해서 교회와 성도들 역시 바르고 건강하게 되기를 바란다.
필력이라고 할 것도 없이 부족한 사람에게 2016년 한 해 “목회” 라는 주제로 글을 실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여러 모로 배려해 주신 크리스천 라이프 신문사의 대표 장명애 사모와 편집을 총책임하시는 이승현 목사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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