뻣뻣함 길들여지기 (20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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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7-10 10:56 조회5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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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계신 부모님께서 기도하시는 중에 아들 목사에게 얼마의 돈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시면서 돈을 보내주셨다. 몇 푼 되지도 않는 노인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시는 분들이 무슨 여유가 있다고 돈을 보내시겠다는 것인지 만류했지만 “하나님께서 김 목사 섬기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무슨 뜻이 있다”는 것이다.
4년 전 쯤 집사님 한 분이 사 준 구두가 있었는데 두 번 정도 굽을 갈아서 신었지만 이제는 가죽이 낡고 갈라져서 곧 옆구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염치없게도 부모님께서 주신 돈으로 중저가 브랜드의 구두 두 켤레를 주문했다. 또 한 켤레는 예전에 교우 한 분이 선물한 운동화가 있었는데 옆구리가 터져버렸다. 어느 날 아내가 워킹 할 때 신자고 하면서 운동화를 사 주었다.
새 구두를 길들기까지 대신 신어주는 직업도 있다는 재미있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진짜로 새 구두는 얼마나 뻣뻣한지 처음에 신으려면 발이 들어가지지를 않는다. 그래서 새 구두를 신을 때는 반드시 구두 주걱을 사용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발에 꽉 끼는 사이즈의 신발이 발도 아프고 조이는 압박이 세지만 자꾸 신다 보면 가죽이 내 발에 맞게 길들여진다. 나중에는 다른 도구 없이도 발을 이리저리 조금 비틀면 그냥 신어진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잘 길들여진 구두인가, 아니면 아직도 새 구두처럼 뻣뻣한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어떤 역경이나 사고가 닥쳐 낭패를 겪을 때나 하나님을 찾고 낮아지지 그렇지 않으면 마치 새 구두처럼 하나님이 신기에 불편한 사람이 된다.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 생각, 라이프스타일, 사고방식, 인생의 계획이 하나님께 길들여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자기 인생에 맞게 길들이려 한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이익과 형통, 번영과 승리를 위해서 필요할 뿐이다. 오직 나를 사랑해주는 하나님, 학업과 직장과 사업 그리고 내가 하는 일들을 잘 되게 해 주는 하나님, 내 자녀들과 집안을 아무 탈 없이 지켜주는 하나님, 단지 램프의 요정과 같은 그런 하나님을 원한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못 깨닫는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또 무엇엔가 익숙해지며 알게 모르게 길들여지게 되어 있다.
문제는 누구에게, 또 무엇에 길들여지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길들여진다면 건강한 신자이다.
말씀과 기도는 균형 잡힌 건강한 신앙의 두 날개와 같다.
하지만 말씀과 기도는 죄성과 세상의 흐름에 익숙한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 육신과 삶이 그 안에 잘 들어가지지를 않는다. 또한 말씀에 대한 순종과 기도의 무릎을 꿇는 것 역시 몰라서 못할 수 있지만 알면서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 “목이 곧은 백성”으로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 분의 뜻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것이 처음부터 잘 될 리가 없다.
그래도 자꾸 해 봐야 한다.
우리는 그래야만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4년 전 쯤 집사님 한 분이 사 준 구두가 있었는데 두 번 정도 굽을 갈아서 신었지만 이제는 가죽이 낡고 갈라져서 곧 옆구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염치없게도 부모님께서 주신 돈으로 중저가 브랜드의 구두 두 켤레를 주문했다. 또 한 켤레는 예전에 교우 한 분이 선물한 운동화가 있었는데 옆구리가 터져버렸다. 어느 날 아내가 워킹 할 때 신자고 하면서 운동화를 사 주었다.
새 구두를 길들기까지 대신 신어주는 직업도 있다는 재미있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진짜로 새 구두는 얼마나 뻣뻣한지 처음에 신으려면 발이 들어가지지를 않는다. 그래서 새 구두를 신을 때는 반드시 구두 주걱을 사용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발에 꽉 끼는 사이즈의 신발이 발도 아프고 조이는 압박이 세지만 자꾸 신다 보면 가죽이 내 발에 맞게 길들여진다. 나중에는 다른 도구 없이도 발을 이리저리 조금 비틀면 그냥 신어진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잘 길들여진 구두인가, 아니면 아직도 새 구두처럼 뻣뻣한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어떤 역경이나 사고가 닥쳐 낭패를 겪을 때나 하나님을 찾고 낮아지지 그렇지 않으면 마치 새 구두처럼 하나님이 신기에 불편한 사람이 된다.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 생각, 라이프스타일, 사고방식, 인생의 계획이 하나님께 길들여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자기 인생에 맞게 길들이려 한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이익과 형통, 번영과 승리를 위해서 필요할 뿐이다. 오직 나를 사랑해주는 하나님, 학업과 직장과 사업 그리고 내가 하는 일들을 잘 되게 해 주는 하나님, 내 자녀들과 집안을 아무 탈 없이 지켜주는 하나님, 단지 램프의 요정과 같은 그런 하나님을 원한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못 깨닫는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또 무엇엔가 익숙해지며 알게 모르게 길들여지게 되어 있다.
문제는 누구에게, 또 무엇에 길들여지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길들여진다면 건강한 신자이다.
말씀과 기도는 균형 잡힌 건강한 신앙의 두 날개와 같다.
하지만 말씀과 기도는 죄성과 세상의 흐름에 익숙한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 육신과 삶이 그 안에 잘 들어가지지를 않는다. 또한 말씀에 대한 순종과 기도의 무릎을 꿇는 것 역시 몰라서 못할 수 있지만 알면서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 “목이 곧은 백성”으로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 분의 뜻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것이 처음부터 잘 될 리가 없다.
그래도 자꾸 해 봐야 한다.
우리는 그래야만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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