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라주어서 고맙습니다. (201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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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2-25 13:58 조회7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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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떠나려나?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더니 무덥다. 열대야의 끈끈함에서 마치 여름의 비명 소리를 듣는 것 같다. 곧 가을이 계절의 중심에 들어오겠지. 해마다 계절은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알고 각 계절마다 자기의 때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고는 뒤에 오는 계절에게 자리를 내 준다. 누가 보든 안 보든, 누가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자기 이름의 몫을 해 낸다.

이전 사택에서 몇 개라도 따 먹을 생각에 호박을 옮겨 심었는데 땅이 척박해서 그런지 건강하지를 못하고 볼 때마다 늘 누런 잎으로 여망이 없어 보인다. 이사하고 며칠 뒤 이한나 권사님께서 가져오신 호박을 몇 뿌리 심었는데 어느 날 작은 호박이 몇 개 열렸다. 너무 반가워서 호박에게 “고맙다”는 인사가 절로 나왔다. 사실 뒤꼍의 텃밭에는 거의 매일 물을 주었지만 호박 밭에는 호스가 닿지 않아 긴 호스를 별도로 연결해야 줄이 닿는 불편함(?)-게으름이겠지-때문에 처음에 뿌리가 활착하기 까지만 자주 물을 주었고 텃밭에 여러 번 줄 때 한 번 줄 정도로 사실 제대로 물도 주지 못했다.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성을 다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잔디를 깎으면서 보니까 호박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자기가 알아서 크고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특한지 아내에게 달려가 말했더니 집사람도 무척이나 반색하며 좋아했다.

예배를 인도하는 자로 앞에 서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보인다. 은혜를 받는 사람이 보인다. 찬양을 허투루 부르지 않고 찬양 속에 영혼의 기도가 응축되어 있는 사람들, 기도를 위해 모은 손이 진실하고 간절해 보이는 사람들, 떨어지는 말씀을 한 알이라도 놓치지 않고 심령을 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축도가 끝난 이후에도 은혜의 여운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들의 눈빛에서, 태도에서, 몸과 마음가짐에서, 말하는 것에서 믿음의 새싹이 보이고, 뻗어나가는 가지가 보이고, 차츰 무성해지는 잎이 보이고, 꽃이 보이고, 열매가 보인다. 그게 은혜가 된다.

신년 대심방을 통해 방문하는 각 가정에 이르면 축복기도와 본인이 뽑은  약속의 말씀을 본문삼아 축복을 선포한다. 그리고 준비한 다과와 식사를 대접 받고, 대화를 나누노라면 나는 목회자로서 그 영혼과 삶을 다 챙기지 못한 것 같은데 어느 새 이렇게 믿음이 자랐는지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진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은혜를 주신 것이지만 주신 은혜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수용하여 속사람이 잘 자라준 그 모습에, 열매를 맺은 그 모습에서 자기가 알아서 잘 자라준 작은 호박의 모습이 마음을 스쳐지나간다. 심고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자라게 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소리 없이 잘 자라준 교우들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지금 나는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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