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용기이고, 쉼도 용기이다. (201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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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2-20 04:29 조회7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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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쉬어가세, 쉬엄쉬엄 하세.”
그런데 쉬어가고, 쉬엄쉬엄 할 줄을 모른다.
우리 삶은 매사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전력질주로만 달릴 수도 없고, 거북이걸음으로만 갈 수도 없다.
하지만 멈추고 쉰다는 것은 더 불안하다.
그래서 ‘쉼’이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여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제때 쉬어주지 않으면 결국 오래 달리지도 끝까지 달리지도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쉬어 가라’고 설득해야만 한다.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해서 달린 것은 정말 잘한 일이지만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잘못한 것 가운데 하나는 쉼 없는 채찍질만 계속 가했다는 것이다.
20세기 미국 로마 가톨릭교회의 작가였던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이 관상하면서 통찰한 말 가운데
“숨통이 끊어지지 않으려면 잠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편안히 앉아있어야 할 때가 있다.”라는 말이 마음을 후벼 판다.
살려면 잠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는 지적은 정확하게 맥을 짚은 말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삶에 생기가 있고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반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침체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고정관념과 강박관념이 지금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쉬지를 못한다. 아니 쉬려고 하지를 않는다.
숨통이 조여오고 숨이 턱에 차오르는데도 말이다.
쉬는 것도 훈련이라면 이상하고 어리석은 말일까?
쉬는 것을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쉼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스스로 쉬어야 한다는 말을 못한다.
누군가에게 쉬어야겠다는 말도 못한다.
또한 누구에게 쉬라는 말도 못한다.
‘쉼’이라는 말은 다른 세계의 관념이고 언어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척과 도전의 삶이 용기이듯이 쉬는 것도 용기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없다.
왜냐하면 그게 사는 길인데 그게 죽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도 아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설득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 쉬지 못하고,
무엇을 이룬 다음에는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또 쉬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쉬면 모든 것이 멈출 것 같은 불안감,
일에 몰두해야만 살아있는 것 같은 강박감,
그런 습관과 생각들에 오래 갇혀 있으면 끝내 쉬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사는 것이 용기이듯이 쉬는 것도 용기이다.
삶과 쉼은 서로 같은 것이다.
건강한 삶과 풍성한 삶을 위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실 ‘쉼’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나태가 아닌 느긋한 여유를 위하여, 게으름이 아닌 재충전을 위한 쉼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을 얼마만큼 내려놓는 것이 자유이며 참된 ‘쉼’일까?’에 대하여
주님 앞에서 고민하고 삶을 위한 쉼을 위해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숨통이 트이고 살기 위해서.
그런데 쉬어가고, 쉬엄쉬엄 할 줄을 모른다.
우리 삶은 매사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전력질주로만 달릴 수도 없고, 거북이걸음으로만 갈 수도 없다.
하지만 멈추고 쉰다는 것은 더 불안하다.
그래서 ‘쉼’이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여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제때 쉬어주지 않으면 결국 오래 달리지도 끝까지 달리지도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쉬어 가라’고 설득해야만 한다.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해서 달린 것은 정말 잘한 일이지만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잘못한 것 가운데 하나는 쉼 없는 채찍질만 계속 가했다는 것이다.
20세기 미국 로마 가톨릭교회의 작가였던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이 관상하면서 통찰한 말 가운데
“숨통이 끊어지지 않으려면 잠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편안히 앉아있어야 할 때가 있다.”라는 말이 마음을 후벼 판다.
살려면 잠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는 지적은 정확하게 맥을 짚은 말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삶에 생기가 있고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반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침체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고정관념과 강박관념이 지금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쉬지를 못한다. 아니 쉬려고 하지를 않는다.
숨통이 조여오고 숨이 턱에 차오르는데도 말이다.
쉬는 것도 훈련이라면 이상하고 어리석은 말일까?
쉬는 것을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쉼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스스로 쉬어야 한다는 말을 못한다.
누군가에게 쉬어야겠다는 말도 못한다.
또한 누구에게 쉬라는 말도 못한다.
‘쉼’이라는 말은 다른 세계의 관념이고 언어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척과 도전의 삶이 용기이듯이 쉬는 것도 용기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없다.
왜냐하면 그게 사는 길인데 그게 죽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도 아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설득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 쉬지 못하고,
무엇을 이룬 다음에는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또 쉬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쉬면 모든 것이 멈출 것 같은 불안감,
일에 몰두해야만 살아있는 것 같은 강박감,
그런 습관과 생각들에 오래 갇혀 있으면 끝내 쉬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사는 것이 용기이듯이 쉬는 것도 용기이다.
삶과 쉼은 서로 같은 것이다.
건강한 삶과 풍성한 삶을 위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실 ‘쉼’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나태가 아닌 느긋한 여유를 위하여, 게으름이 아닌 재충전을 위한 쉼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을 얼마만큼 내려놓는 것이 자유이며 참된 ‘쉼’일까?’에 대하여
주님 앞에서 고민하고 삶을 위한 쉼을 위해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숨통이 트이고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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