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갈 수 있는 말 (2015.09.06)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07 15:27 조회789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말은 의사표현의 수단이기에 말하지 않으면 뜻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는 어쨌든 그 무엇이 되었든 누군가에게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져 있다. 말이 멈추어지지 않고 계속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말을 잘해야 하고 말을 아껴야 한다.
“은 쟁반에 아로새긴 금 사과”(잠언 25:11)와 같은 말이 있고, ‘의미 없이’ 내뱉어지는 말도 있다.
말은 인격이며, 그 사람이기에 말이 나를 표명하고 증명하는 것이다.
한 가지 단어나 말이 두 개 이상의 뜻을 가지는 경우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다 끝났어.’라는 말인데 두 가지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절망 앞에서 새어나오는 탄식이고, 또 하나는 안도감에서 나오는 말이다.
살아온 세월만큼의 세상과 인생의 광야와 바다를 건너오면서 때로 깊은 상심과 절망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며 ‘다 끝났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끝나지 않고 소망의 문이 열렸다. 또한 힘차게 달려온 시간의 가쁜 숨을 고르면서 ‘다 끝났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아도 또 내려와야 하며, 그리고 또 다른 산을 올라가야 한다. ‘끝’이라고 선언을 하고 다 끝난 것 같아도 어떤 경우든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끝까지 가 봐야 안다.
‘끝’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기에 함부로 ‘끝’을 말하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다짐을 받아내야 한다.
세상에는 신비로운 게 많다. 지구와 우주에는 신비로운 것으로 가득하다.
그 중에 가장 신비로운 것을 꼽는다면 사람이다.
첨단 과학이 밝혀낸 인체의 신비만 봐도 사람의 몸은 마치 우주의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신비하다.
인체뿐만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신비롭다 못해 참 알 수 없는 존재여서 ‘알다가도 모를 게 사람’이라는 말은 한다.
이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그렇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나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나를 모른다. 이것이 자신에 대해서도, 또 누군가에 대해서도 쉽게 판단하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끝까지 가 보지 않고는 말 못한다.
그렇다면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어떨까? 그건 처음부터 믿고 끝까지 가는 것이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기에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의 낮은 곳에 있는 나를 찾아오셨다.
주님, 그 분을 섬긴다는 말에는 신앙의 모든 요점이 들어있지만 믿음과 사랑 없이는 주님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믿음과 사랑은 말이 아닌 행함으로 나타난다.
베드로가 ‘다른 사람은 주님을 버려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그는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심문 받으시는 주님을 외면했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사람에게든, 주님 앞에서든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도 말을 아껴 절제해야 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는 어쨌든 그 무엇이 되었든 누군가에게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져 있다. 말이 멈추어지지 않고 계속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말을 잘해야 하고 말을 아껴야 한다.
“은 쟁반에 아로새긴 금 사과”(잠언 25:11)와 같은 말이 있고, ‘의미 없이’ 내뱉어지는 말도 있다.
말은 인격이며, 그 사람이기에 말이 나를 표명하고 증명하는 것이다.
한 가지 단어나 말이 두 개 이상의 뜻을 가지는 경우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다 끝났어.’라는 말인데 두 가지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절망 앞에서 새어나오는 탄식이고, 또 하나는 안도감에서 나오는 말이다.
살아온 세월만큼의 세상과 인생의 광야와 바다를 건너오면서 때로 깊은 상심과 절망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며 ‘다 끝났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끝나지 않고 소망의 문이 열렸다. 또한 힘차게 달려온 시간의 가쁜 숨을 고르면서 ‘다 끝났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아도 또 내려와야 하며, 그리고 또 다른 산을 올라가야 한다. ‘끝’이라고 선언을 하고 다 끝난 것 같아도 어떤 경우든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끝까지 가 봐야 안다.
‘끝’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기에 함부로 ‘끝’을 말하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다짐을 받아내야 한다.
세상에는 신비로운 게 많다. 지구와 우주에는 신비로운 것으로 가득하다.
그 중에 가장 신비로운 것을 꼽는다면 사람이다.
첨단 과학이 밝혀낸 인체의 신비만 봐도 사람의 몸은 마치 우주의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신비하다.
인체뿐만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신비롭다 못해 참 알 수 없는 존재여서 ‘알다가도 모를 게 사람’이라는 말은 한다.
이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그렇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나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나를 모른다. 이것이 자신에 대해서도, 또 누군가에 대해서도 쉽게 판단하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끝까지 가 보지 않고는 말 못한다.
그렇다면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어떨까? 그건 처음부터 믿고 끝까지 가는 것이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기에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의 낮은 곳에 있는 나를 찾아오셨다.
주님, 그 분을 섬긴다는 말에는 신앙의 모든 요점이 들어있지만 믿음과 사랑 없이는 주님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믿음과 사랑은 말이 아닌 행함으로 나타난다.
베드로가 ‘다른 사람은 주님을 버려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그는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심문 받으시는 주님을 외면했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사람에게든, 주님 앞에서든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도 말을 아껴 절제해야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